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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 잃어버린 색을 찾아서 희망, 감정, 공동체

by warmypick 2025.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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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롤'의 포스터 사진
영화 '트롤'의 포스터

 2016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작품 '트롤'은 다채로운 색감과 신나는 음악으로 구성된 뮤지컬 판타지이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감정의 회복과 공동체적 위로, 그리고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보기엔 유쾌하고 가볍지만, 이 영화는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관객에게 조용한 울림을 준다. 이 글에서는 '희망', '감정의 회복', '공동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트롤'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하나씩 짚어본다.

1. 희망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피어난다

 '트롤'의 세계는 두 개의 상반된 집단, 트롤과 베르겐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트롤은 언제나 노래하고 춤추며 포옹하는, 말 그대로 행복의 구현체처럼 묘사된다. 이들은 색채와 감정이 넘치며, 공동체와 감정 표현을 삶의 중심에 둔다. 반면 베르겐족은 그와 정반대다. 이들은 선천적으로 행복할 수 없다고 믿고, 오직 트롤을 먹는 행위를 통해서만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여긴다. 이러한 설정은 단순한 판타지 세계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현대인이 행복을 외부로부터 얻으려는 심리와 지나친 타인 의존의 메커니즘을 은유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트롤의 행복이 현실적으로 특별한 조건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물질적 풍요나 안정된 환경 때문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스스로 조절하고, 내면에서 행복을 생성해 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주인공 파피는 트롤 중에서도 가장 낙천적인 인물로, 친구들을 구하기 위한 여정을 망설임 없이 시작한다. 그가 위험을 감수하며 나아가는 모습은 단순한 용기의 발현이 아니라,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지키려는 주체적인 감정 선택의 결과다. 파피의 행동은 영화 전체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메시지로 연결된다. 행복은 누가 대신 만들어 주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지켜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어린이 관객에게는 감정의 주도권을 교육하는 도구가 되며, 성인 관객에게는 자기 인식과 내면적 태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접근으로 기능한다. 행복을 소비나 획득의 대상으로 보는 베르겐족의 관점은 곧 자기감정에 대한 주인의식이 결여된 현대인의 자화상처럼 읽힌다. 영화 후반부, 베르겐족이 트롤 없이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은 특히 인상 깊다. 이는 단순한 줄거리의 반전이 아니라, 희망의 원천이 외부 자극이 아닌 개인의 선택에 있다는 메시지의 실현이다. 베르겐의 변화는 파피의 용기에서 비롯되었지만, 결국 그들 스스로가 감정을 바라보는 방식을 전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트롤'은 희망을 거창한 결말이나 사건에서 찾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어떤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보는지를 통해 희망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피어난다고 말한다. 이 영화가 전하는 진짜 위로는, 누군가가 나를 구해줄 것이란 기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감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결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2. 감정은 감추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고 돌보는 것이다

 '트롤'의 중심 서사에서 감정의 층위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인물은 브랜치다. 트롤 공동체가 모두 밝고 생기 넘치는 색채로 가득한 반면, 브랜치는 회색빛 외투를 입고,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숨긴 채 살아간다. 이 대조적인 설정은 단순한 캐릭터 구도가 아니라, 감정을 억제하고 회피하는 현대인의 정서 구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브랜치는 처음부터 공동체와의 거리감이 뚜렷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파피를 비롯한 다른 트롤들과 달리 노래도, 춤도, 포옹도 거부하며 혼자 살아간다. 표면적으로는 현실적인 위협에 대비하는 '이성적인 생존자'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점점 깊어질수록 그의 방어적인 태도 이면에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상실이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후,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감정을 봉인해 버린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대개 사회는 긍정적인 감정은 환영하지만,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은 억제하거나 조용히 넘기길 요구한다. 하지만 '트롤'은 감정은 억누를수록 무기화되며, 회피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숙이 침전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브랜치가 색을 잃은 존재로 등장하는 건, 그가 단지 어두운 성격이기 때문이 아니라, 감정을 직면하지 못한 결과로 읽을 수 있다. 브랜치의 변화는 단번에 이뤄지지 않는다. 파피와의 여정을 통해 그는 조금씩 마음을 열고, 마침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그의 몸에는 다시 색이 돌아온다. 이 장면은 단순한 시각적 전환을 넘어, 감정의 회복이 외적인 변화로 연결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타인이 강요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감정을 마주하기로 선택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모든 연령층에 강하게 다가온다. 어린이에게는 감정 표현이 창피한 일이 아니라 건강한 성장의 일부임을 알려주고, 성인에게는 지나치게 억제된 감정이 어떻게 관계와 삶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조명한다. 브랜치의 내면 여정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의 서사이자, 감정이란 돌봄이 필요하고, 마주해야만 회복된다는 영화의 중심 철학을 가장 설득력 있게 구현한 예시다. '트롤'은 단지 감정을 밝고 긍정적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밝음의 이면에 존재하는 그늘, 그리고 그 그늘을 마주한 인물이 어떻게 다시 회복되어 가는지를 섬세하게 따라간다. 이는 단순히 어린이를 위한 교훈을 넘어서, 모든 세대가 자기 안의 감정을 성실히 들여다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3. 진짜 행복은 나누는 순간에 빛난다

 '트롤'의 서사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중심에 둔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그 행복을 단순히 개인의 감정이나 만족으로 한정하지 않고, 타인과 함께 나누는 경험을 통해 확장되는 감정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공동체는 감정이 일방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항상 함께 나누는 구조를 지닌다. 반면 베르겐족은 그 정반대의 구조를 갖고 있다. 베르겐의 사회는 계급적이고 고립적이며, 각자가 자신의 불행을 감추고 살아간다. 진정한 감정 교류가 부재한 이 사회는,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을 갈구하면서도 그 방식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이 영화가 진정한 전환점을 맞는 순간은 바로 이 구조가 깨질 때다. 트롤과 베르겐이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감정을 공유하는 장면은, 단순히 위기에서 벗어나는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두 공동체가 처음으로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순간이다. 이 장면은 행복은 나누는 행위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는 영화의 핵심 주제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장면이기도 하다. 파피가 끊임없이 말하듯, 진짜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며, 그 존재는 타인과 연결될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이는 자칫 진부할 수 있는 교훈이지만, 영화는 이를 매우 정교하게 설계된 세계관과 캐릭터의 감정선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행복이란 것은 일회적인 감정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다시 피어나는 감정의 흐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영화 후반부, 베르겐들이 더 이상 트롤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는 과정은, 행복의 정의가 외부에서 내부로 이동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타인을 통제하거나 소비하는 방식이 아닌, 함께 감정을 나누는 방식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점을 영화는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트롤'은 이처럼 공동체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개인의 성장이나 회복이 공동체와 단절된 채로는 완성될 수 없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감정이라는 것이 어떻게 사람들 사이에서 증폭되고 회복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가 밝고 유쾌한 톤을 유지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기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나누지 않으면 사라지는 감정, 나눌수록 더 빛나는 감정. '트롤'은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말한다.

느낀 점

 '트롤'을 보고 난 후, 처음에는 밝고 경쾌한 색채와 익숙한 팝 음악에 집중하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이면에 깔린 정서가 마음속에 천천히 남았다. 단지 즐거운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진짜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지를 아주 부드럽게 묻는 작품이었다. 특히 브랜치라는 인물이 내게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정을 되짚게 해주는 존재였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불편해 숨기고 외면했던 순간들이 떠올랐고, 그 감정을 회복하는 방식이 반드시 거창하거나 극적일 필요는 없다는 걸 영화는 조용히 일러주었다. 또한 행복을 누가 만들어주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어떻게 감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도 분명하게 와닿았다. 트롤들이 공동체 속에서 감정을 자연스럽게 나누며 살아가는 방식은 단순한 이상향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감정의 건강한 흐름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처럼 시작되지만, 오히려 어른이 된 지금, 감정의 무게와 방향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더 깊게 다가오는 영화라고 느꼈다. 이 영화를 통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 하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돌볼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트롤'은 화려한 화면 뒤에서, 우리가 가장 놓치기 쉬운 질문들을 부드럽고 정직하게 꺼내놓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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