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영화 '오베라는 남자'는 툴툴대고 말수가 적으며, 감정 표현이 서툰 노인 '오베'가 주변 사람들과의 예상치 못한 관계를 통해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이웃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않고 혼자만의 규칙과 기억에 매여 살던 오베가, 외국에서 이사 온 가족과의 마찰을 시작으로, 점점 타인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은 단순히 이웃 간의 이야기 그 이상이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사람은 고립되어 있을 땐 자신의 슬픔에 갇혀 있지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는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이 글에서는 외로움과 분노에 갇혀 있던 오베가 어떻게 다시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1. 상실 속에 멈춰버린 오베의 시간
영화의 시작에서 오베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마을을 순찰하며 이웃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규칙을 어긴 사람이 있으면 어김없이 지적합니다. 그는 고장 난 자전거를 두고 가거나, 차를 잘못 주차한 사람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지적하는 데에 하루를 보냅니다. 저는 처음엔 그저 지나치게 까다로운 성격이라고 느꼈지만, 곧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고, 그 후로 줄곧 혼자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오베는 아내와 함께했던 일상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여전히 그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집 안에 아내의 물건을 그대로 두고, 식사할 때에도 두 사람분의 자리를 비워놓습니다. 그에게 시간은 아내가 떠난 날 이후로 멈춰 있었고, 새로운 일이나 관계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는 슬픔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저 규칙과 일상이라는 틀 안에 감정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상실은 단순히 아내를 잃은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의 관계도 함께 끊어낸 상태였습니다. 주변에서 말을 걸거나 인사를 해도 오베는 대꾸하지 않거나 시선을 피합니다. 자신이 만든 질서와 규칙 속에 갇힌 그는,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관계 맺는 법도 점점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매일같이 마을을 돌아보는 이유가 단지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하루를 버티기 위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한 일 없이 반복되는 그 일상은, 오베에게는 남겨진 몇 안 되는 생활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아내와 함께했던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영화는 오베가 감정을 폭발시키거나 큰 목소리로 슬픔을 말하지 않지만, 그의 행동과 침묵만으로도 상실감이 얼마나 깊은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큰 사건보다도 일상의 사소한 행동 속에 감정을 담아내며, 상실을 견디는 한 사람의 내면을 조용하게 따라갑니다. 오베는 무너진 삶을 복구하지 못한 채 그 안에 머물고 있었고, 그 고요한 무표정 뒤에는 아내 없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막막함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2. 타인이 다시 연결한 오베의 일상
오베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완전히 분리된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그는 길에서 마주치는 이웃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고,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에게도 최소한의 말만 하고 지나칩니다. 집 안에서도 아내가 떠난 뒤로 거의 모든 일을 무의미하게 반복하며 살고 있지만, 이웃들이 그의 일상에 조금씩 스며들면서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바로 옆집으로 이사 온 파르바네 가족입니다. 외국 출신인 이 부부는 문화도, 말투도, 생활 방식도 오베와 다르지만, 오베는 그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계속 놓입니다. 처음엔 도움을 요청하러 찾아온 그들을 귀찮아하고 무시하지만, 어쩔 수 없이 손을 내밀게 되는 순간들이 반복되면서, 그는 점점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게 됩니다. 특히 파르바네는 오베가 싫은 기색을 보이거나 쌀쌀맞게 굴어도 개의치 않고 꾸준히 대화를 시도합니다. 저는 그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일반 적으로라면 그만두었을 상황에서도 그녀는 그를 고립된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닫힌 사람으로 보고 먼저 다가갑니다. 아이를 업고 오베에게 운전을 부탁하거나, 남편의 병원 동행을 부탁하는 장면은 단순히 도움 요청이 아니라 관계를 맺는 시작이었습니다. 오베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오랜만에 누군가의 일에 의미 있게 관여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는 누가 고장 난 사다리를 수리하러 오기를 기다리기보다, 자신이 도구를 들고 먼저 움직이고, 아이가 울면 멀리서 지켜보다가 직접 다가서기도 합니다. 저는 그 장면들이 오베가 타인을 다시 받아들이는 첫걸음이었고, 그 걸음은 강요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온 반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오베의 이런 반응들이 갑작스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매우 천천히, 작은 사건들로 축적되는 모습을으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그는 여전히 말수가 적고, 툭툭 내뱉는 말투는 변하지 않았지만, 점점 사람들을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변합니다. 저는 그가 타인을 향해 문을 연다는 것이, 단순히 친절을 베풀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외로움을 덜어내기 위한 무의식적인 움직임이라고 느꼈습니다. 오베에게 있어 타인은 오랫동안 불편하고 불필요한 존재였지만, 이제는 삶의 리듬을 바꾸고 감정을 흔드는 존재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타인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오베의 일상은 서서히 방향을 틀고 있었고, 그 변화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이었습니다.
3. 삶이 아닌 마음에서 시작된 변화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오베는 조금씩 주변과 더 많이 어울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 변화를 단순히 행동의 변화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여전히 불편한 말투를 고치지 않고, 남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성격도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는 오베의 진짜 변화가 겉모습보다도 마음 안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베는 더 이상 사람을 피하지 않고, 스스로 누군가의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파르바네의 딸이 오베에게 그림을 건넸을 때, 그는 처음에는 별말 없이 받아 들지만, 방 안에 조용히 그 그림을 걸어둡니다. 그 행동 하나에 그는 말하지 않아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베가 완전히 바뀌었다기보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진짜 변화가 시작됐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그가 직접 사람들을 도우며 책임감을 느끼는 장면들이 많아지는데 이웃의 아이가 다치거나, 누군가가 차를 몰고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그는 주저 없이 움직입니다. 이전 같았으면 "왜 나한테 말하냐"는 식으로 밀어냈을 일이었지만, 이제 그는 그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가 책임감을 느끼게 된 이유가 단순히 타인과 가까워졌기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멈춰 있던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오베는 그동안 자신의 삶이 끝났다고 믿고 있었지만, 타인을 통해 다시 감정이 움직이면서, 자신도 누군가를 위해 필요한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그건 단순한 성격의 변화가 아니라,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오베는 다시 웃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로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파르바네 가족은 더 이상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베가 스스로 챙기고 싶어 하는 가족처럼 바뀝니다. 특히 후반부에 오베가 고양이에게 사료를 챙겨주고, 마을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거나 손을 뻗는 장면은, 그가 더 이상 세상과 거리를 두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베의 삶은 거창하게 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같은 마을, 같은 집, 같은 규칙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아무 의미 없던 하루가, 이제는 누군가를 위한 시간이 되었고, 그가 움직이는 모든 이유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작은 마음의 움직임이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변화였다고 생각합니다.
느낀 점
이 영화를 보며 가장 크게 다가온 감정은 이해한다는 것의 깊이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처음 오베를 보았을 때, 저 역시 그를 단순히 고집스럽고 예민한 노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그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펼쳐나가면서, 사람은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절대 다 알 수 없고,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과 잃어버린 것들, 그리고 말하지 못한 감정들을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베는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이 서툴렀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모습이 오히려 낯설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저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누군가를 바꾸거나 이끌어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마음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결국 '사람은 관계 안에서 천천히 변화하고, 그 변화는 나 혼자만의 결심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조용하게 알려주는 영화라고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