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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빈센트 관계로 치유되는 삶 회복, 온기, 가족

by warmypick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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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인트 빈센트'의 포스터 사진
영화 '세인트 빈센트'의 포스터

 2015년 국내 개봉한 영화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는 세대를 초월한 우정, 가족이란 이름 없이도 맺어지는 정서적 유대, 그리고 서로를 통해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따뜻한 휴먼 드라마입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던 관계들이 시간이 지나며 점차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이 영화는 '삶을 바꾸는 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과의 연결'이라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합니다. 특히 영화의 중심에는 거칠고 무례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따뜻한 속내를 지닌 노인 '빈센트'가 있고, 그와 아이 '올리버'의 관계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의 핵심입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세인트 빈센트' 속 인물들의 이야기, 서서히 피어나는 온기, 그리고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 작품이 우리에게 어떤 위로와 공감을 주는지 나누어 보려 합니다.

1.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를 통해 회복되는 이야기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인물은 역시 빈센트였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괴짜 노인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웃에게 욕을 하고, 병원비도 밀린 채로 술에 취해 있거나 경마에 돈을 거는 등,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고집스럽게 살아갑니다. 저는 처음에 그를 보고 단순히 그저 그런 불쾌한 노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의 또 다른 모습이 하나씩 드러났습니다. 빈센트는 매주 요양병원에 있는 아내를 찾아갑니다. 아내는 이미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인데도, 그는 묵묵히 옷을 갈아입히고 발톱을 깎아주며 옆을 지킵니다. 이 장면에서 큰 말이나 감정적인 연출은 없었지만, 저는 그가 왜 그렇게 거칠게 살아왔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거리감과, 그녀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마음이 그를 지금처럼 만든 것 같았습니다. 이웃으로 이사 온 싱글맘 매기와 그녀의 아들 올리버도 또 다른 형태의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매기는 간호사로 밤낮없이 일해야 하고, 올리버는 새로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며 친구 하나 없이 지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매기는 어쩔 수 없이 빈센트에게 아이를 잠시 맡기게 됩니다. 빈센트는 올리버에게 자신이 살아오면서 터득한 방법들을 전해줍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돌아왔을 때 단호하게 말합니다. "다시 맞고 오면 안 된다. 때릴 수 있어야 해." 이 말은 폭력을 조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빈센트는 올리버에게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는 직접 아이를 데리고 병원 계좌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세탁하는 법도 가르칩니다. 빈센트의 방식은 서툴고 조심스럽지 않지만, 분명 그 속에는 아이를 향한 관심과 애정이 들어 있습니다. 올리버도 빈센트의 말투, 행동,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며, 그가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사실은 다정한 사람임을 알아갑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올리버가 학교에서 '내가 생각하는 영웅'을 발표할 때, 그가 무대 위로 빈센트를 불러 세운 장면은 이 관계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 영화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두 사람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회복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빈센트는 올리버를 통해 다시 누군가를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을 되찾고, 올리버는 빈센트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됩니다. 두 사람 모두 상처를 안고 있었지만, 그 상처를 치유한 건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 자체였습니다. 

2. 일상 속에서 서서히 피어나는 인간적 온기

'세인트 빈센트'에서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 중 하나는 관계의 변화가 아주 서서히, 억지스럽지 않게 그려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누군가를 도와주는 장면이 극적으로 나타나고, 감정이 갑자기 확 깊어지는 장면이 자주 나오곤 하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빈센트와 올리버, 그리고 매기 사이에 생기는 감정의 변화는 아주 작은 행동들과 일상 속 대화를 통해 조금씩 쌓여갑니다. 처음에는 서로 불편한 관계였습니다. 매기는 빈센트를 믿지 않았고, 빈센트 역시 올리버를 귀찮은 아이 정도로 여깁니다. 하지만 매기가 일하러 간 동안 올리버를 돌보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빈센트는 아이에게 말을 걸기보다는 자신이 하던 일을 그대로 하면서 조용히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를 데리고 경마장에 가거나,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병원에 들러 요양 중인 아내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겉보기에 이상하고 부적절한 장면 같지만,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어른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빈센트가 올리버에게 그 어떤 감정적인 강요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올리버가 놀라거나 당황해할 때도 억지로 설명하려 들지 않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게 오히려 아이에게 더 편안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반대로 올리버 역시 빈센트를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합니다. 아이답게 궁금한 걸 물어보고, 그에 대해 조용히 생각합니다. 이 조용한 주고받음이 저는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두 사람 사이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뢰가 생깁니다. 말수가 적은 빈센트는 아이가 아프거나 고민이 있을 때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와주고, 올리버는 그런 빈센트를 말없이 따라다닙니다. 누가 먼저 다가가는 것도, 강한 사건이 터지는 것도 없는데도 관계가 더 깊어지는 이유는, 서로가 서로의 빈자리를 조금씩 채워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인간적 온기는 거창한 변화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밥을 먹고, 같이 걸으며 이야기 나누고, 서로를 그냥 곁에 두는 것. 바로 그런 아주 평범한 일들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 영화는 조용하게 말해줍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마음이 따뜻하게 남았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은 결국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3. 가족이라는 이름 없이도 연결되는 진짜 관계

 '세인트 빈센트'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가족이라는 단어를 영화가 한 번도 직접적으로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관계의 본질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빈센트, 올리버, 그리고 매기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도 없었습니다. 피를 나누지도 않았고, 법적으로도 엮여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만들어내는 연결은 일반적인 가족보다도 더 견고해 보였습니다. 제가 특히 주목했던 인물은 싱글맘 매기입니다. 그녀는 하루 종일 병원에서 일하며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아들 올리버가 적응하지 못할까 봐 늘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그런 그녀가 처음엔 빈센트를 그저 아이를 봐주는 이상한 이웃 정도로 여겼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자신의 삶 속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참 현실적이었습니다. 사실 매기는 빈센트를 좋아서가 아니라 필요해서 받아들였습니다. 그 시작은 어쩌면 무관심에 가까웠지만, 그 무심한 관계가 계속되며 예상치 못한 신뢰로 바뀌는 장면들이 아주 설득력 있게 그려졌습니다. 예를 들어, 올리버가 병원에 실려 갔을 때 매기가 가장 먼저 연락한 사람이 빈센트였다는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장면은 둘 사이의 관계가 단순한 이웃 이상으로 발전했다는 걸 아주 조용하게 보여줍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부분은, 영화가 전형적인 가족이 아닌 다양한 관계를 통해 정서적인 지지를 어떻게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빈센트와 함께 지내는 임산부 간병인 다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 역시 빈센트에게 급한 돈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고, 반대로 빈센트가 쓰러졌을 땐 병원으로 데려가는 등 서로를 돌봅니다. 둘은 연인도, 가족도 아니지만, 삶의 일정 부분을 공유하면서 실질적인 생활의 연대자 역할을 합니다. 이런 인물들을 보면서 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꼭 혈연에만 묶일 필요는 없다고 느꼈습니다. 오히려 일상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가족에 가까운 존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전통적인 가족 서사를 따르지 않습니다. 대신 각기 다른 인물들이 자기가 가진 것 이상을 내어주며 만든 관계들이, 어느 순간 우리에게 진짜 가족 같은 안정감을 줍니다. 저는 이 점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가족이라는 이름보다, 서로를 위해 해온 작은 행동과 함께 보낸 일상의 시간이 더 큰 의미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느낀 점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빈센트 같은 사람이 실제로도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까칠하게 굴지만, 누구보다 자기를 아끼는 사람에게는 진심을 내보일 줄 아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우리는 종종 그냥 이상한 사람이라고 넘기고,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았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누군가를 단정 짓기 전에 한 번쯤 더 그 사람의 상황을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빈센트는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지만, 마음을 열 수 있는 상황과 사람이 생기자 그 진심이 천천히 드러났습니다. 올리버가 빈센트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모습은 오히려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워 보였고, 덕분에 저는 사람 사이의 믿음이라는 게 꼭 나이와 경험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크게 울거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은 없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꼭 극적인 사건이 있어야 깊어지는 게 아니라, 그저 곁에 있어주고, 밥을 같이 먹고, 안부를 묻는 일처럼 평범한 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걸 느꼈습니다.

 '세인트 빈센트'는 삶을 바꾸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연결일 수 있다는 것을 조용하게 보여주며 그런 연결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일깨워줍니다. 영웅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매일 마주치는 누군가가 이미 내 삶에 필요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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